◇ 유기농과 유기가공식품의 차이, 엄마는 모른다
‘유기농’은 다양한 제품군에 사용되는 용어지만 먹거리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그중 ‘유기농’으로 홍보되는 먹거리는 유기농산물과 유기가공식품으로 분류되는데, 이에 대한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유기농축산물을 관리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에 따르면 '유기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로 친환경농산물에 속한다. 유기농산물은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아야만 '유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농장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한 유기농 인증기관에 화확비료, 농약, 제초제, 첨가제 등의 사용여부 확인을 거쳐 인증을 받는다.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만 유기농 인증 마크를 부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기가공식품'은 유기 농·축산물을 원료 또는 재료로 해 제조, 가공, 유통되는 식품으로 물과 소금을 제외한 유기원료 함량이 제품 중량의 95% 이상이어야 하는 제품을 말한다. ‘유기농 콩’으로 제조한 두부, 된장이나 '유기농 우유'로 제조한 치즈 등을 유기가공식품으로 이해하면 쉽다.
유기가공식품 역시 유기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한 유기농가공식품 인증기관에서 유기원료 함량 등의 검사를 거쳐야만 ‘유기가공식품 마크’를 붙일 수 있다.
유기농 인증 마크와 유기가공식품 인증 마크가 별도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농관원 인증관리팀 관계자는 “유기농가공식품 업체들이 ‘유기농산물을 원료로 가공했다’는 표식을 강조하고자 하는 요구가 있어 인증마크를 따로 만들게 된 것”이라며 “농관원은 기본적으로 유기농 마크를 쓰되 유기가공식품 마크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에 한해 사용하게끔 열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럼 실제로 유기농, 유기가공식품 인증 마크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서울 시내 대형마트 유기농 코너를 방문해 확인해보니 유기농 마크로 단일화된 농산물과는 달리 유기가공식품에는 유기가공식품 마크와 유기농 마크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유기농에 대한 법률이나 규제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유기농, 유기가공식품의 마크의 혼용에 어떤 것이 진짜 인증마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유기농과 유기가공식품의 차이를 모른 채 식품을 구입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유기농 제품을 찾은 한 엄마는 “유기농 마크가 붙어있어 유기농 제품이라고 생각했다”며 “유기가공식품 마크가 따로 있는지는 몰랐다”고 답했다.
케첩이나 마요네즈와 같은 가공식품에도 가공식품 인증마크가 아닌 유기농 마크가 붙어있거나 아이들이 먹는 이유식, 과자 등에도 유기농마크와 유기가공식품 마크가 뒤섞여 사용되면서 소비자는 어떤 마크를 신뢰하면 될지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농관원 인증관리팀 관계자는 “친환경농업법 시행규칙에는 인증기관을 통해 인증 받은 제품에만 유기농 혹은 유기가공식품 마크가 부여되고 있다”며 “제조업체가 좀 더 어필하고 싶은 마크를 선택해 부착하는 것이다. 유기가공식품에 유기농 마크가 부착됐다고 해도 친환경농업법 제도 상 크게 위반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최근 다양한 식품군에 부착된 유기가공식품 마크와 유기농 마크로 인해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 혼란을 겪고 있어 부서에서도 유기농과 유기가공식품 마크의 통합을 검토 중에 있다”고 전했다.
녹색소비자연대 허혜연 국장은 “소비자는 유기농 정보를 유기농제품의 인증마크 확인과 인증번호 검색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마크 단일화를 통해 소비자 혼란을 막고 사후관리까지 철저히 책임져 소비자가 유기농 제품을 정확히 알고 구입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 마크만 있으면 유기농? 진짜 유기농은 누가 솎아내나
유기농 마크와 유기가공식품의 마크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 데는 유기농을 관리하는 관계부처의 일원화가 늦어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 간 우리나라 유기농 먹거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유기식품표시제’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유기가공식품인증제’로 나뉘어 관리돼 유기농에 대한 촘촘한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난 2014년이 돼서야 유기농 식품이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의 유기가공식품인증제로 완전히 통합되면서 유기농 식품의 관리의 일원화가 시작됐다.
아울러 지난해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친환경농어업법)까지 개정되면서 정부는 소비자들에 유기농 식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증마크가 있다고 해서 100% 유기농이라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이자 국제유기심사원협회 유병덕 심사원은 “유기식품과 일반식품의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는 절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유기농 식품 심사는 모두 실험실에서 이뤄진다. 흙의 오염도, 수질, 작물의 잔류 농약, 항생제 여부까지 분석된다. 이 같은 인증 방식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실험실 분석을 통한 인증이 효과적인 방법인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은 단지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이어 유 심사원은 “EU나 미국, 일본은 유기인증을 실험실 분석으로만 하지 않는다”며 “심사원은 논, 밭, 목장을 찾아가 흙을 직접 만져보고 작물과 동물의 상태를 확인한 후 인증을 내준다. 이것이 우리나라 유기농과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충남연구원 김기흥 책임연구원도 “믿을 수 있는 유기농 먹거리를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인증제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생산자가 참여하는 참여형 인증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